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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세계를 더 자세히 인식하기 위해 차이와 구별을 통해 생겨난다. 이에 반해 예술은 감성을 바탕으로 이미지들의 공통된 속성을 밝히며 화자와 세계의 공감과 교류를 통해 발생한다. 그래서 언어적 발상으로 밝혀진 세계의 모습은 철학으로 이미지적 발상으로 밝혀진 세계의 모습은 예술로 이어진다. 

2023 9 29

 

제목 Reality

By La Boum ost

 

우리가 바라는 현실은 갈망할수록 멀어진다. 이 간극은 우리의 잣대로 재단하고 편집하여도 좁혀지지 않는다. 무기력과 허무감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떠올리듯 슬픔과 고통 속에서 행복이 피어난다.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현실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 사이에 중첩 되어있다.

"꿈이 유일한 현실"이라는 Reality (La Boum OST)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 삶의 위안을 찾는다. 고난으로 빚어진 괴로움과 분노를 공허의 세계로 돌려보낼 때, 외눈으로 신기루를 바라보던 욕망의 시선을 환기할 때 비로소 꿈꾸는 현실이 삶의 잿더미 속에서 피어날 것이다.

9th solo show

산골에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도심에서 볼 수 없는 나지막이 드리워진 구름과 산의 율동을 감상할 기회를 얻는다. 언제나 설레게 하는 그 기대감에 창문을 열고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며 나무와 안개의 앙상블을 쫓아가던 중에 새하얀 구름이 시뻘건 산불에서 피어나오는 광경과 마주쳤다. 산불의 연기를 산기슭에 걸쳐진 구름으로 착각한 경험의 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시각적 판단의 불신으로 다가왔으며 결국은 세계에 대한 나의 인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순간이 되었다.

예전부터 예술품은 관객에게 오랫동안 감동을 전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무기질의 재료를 써왔다. 작품에는 먹에 무기질 재료인 유리가루를 섞어서 산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재료로 표현된 산은 고정된 시선으로 세상을 편집해서 바라본 나의 신념을 상징한다.  산은 점점 안개에 뒤덮여 사라져가는데, 이것은 내 신념의 그늘이 흩어지며 세계의 진실에 다가가는 여정을 나타낸다.

​수묵비엔날래 

텍스트가 차이의 구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라면 이미지는 유사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W.J.T 미첼

 작가에게 작품은 삶에 대한 반성의 흔적이지만 관객에게 예술 작품은 자신에 대한 위로에 있다. 지친 일상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삶의 재충전을 위해 많은 행위를 행한다. 집에 걸려있는 작품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 시각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일상을 리셋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한다.

 

 경쟁이 심한 나라의 국민일수록 혹은 삶의 허무함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작품이 담고 있는 가치나 메시지 보다는 감각의 환기를 통한  일상의 재충전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품의 메시지가 어떠한 가치를 담았다고 하여도 관객 삶의 목적과 방향이 작품의 메세지와 어긋나 있다면 예술 작품의 소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술의 목적이 예술 작품의 소비와 유통에 있지는 않지만  작품이 사회에서 유통되지 못하면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되지 못한다. 어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분이 예술가의 재능은 살아남는 것에 있다고 한 이야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 작가가 관객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강요가 아닌 선택이 되고 이 선택이 우리가 가야 할 삶의 지침이 되는 작품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예술의 방향이 어딘지도 모르겠는 밤에 주절 주절....2022 10 23

어떤 물질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방식의 형태와 색, 질감 등으로 적절히 구성되면 그것은 인간에게 어떠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에너지를 발현합니다.

그러한 감흥의 상태는 인간이 물질과 오랜 삶을 함께 영위하며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요인들입니다.  

예술가들은 앞서 밝힌 물질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감흥 인자를 추출하고 새로운 시각적 논리 체계를 구성한 후 그에 따라 물질을 재배치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자체가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세지입니다.

이는 물질과 내가 맺은 특수한 연결 고리로 인해 돌출된 작업 혹은 작업과정에서 보입니다.

즉, 인간과 물질은 분리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더 나아가 “인간과 물질, 혹은 너와 내가 근원은 동일하다”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다. 이름은 가리킴이지 실체가 아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노자

우리가 실재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실재라고 여길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닐스보어

from the first moment of life men ought to begin learning to deserve to live                                  

인간은 인생의 첫 순간부터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I have always belived that good is only beauty put into practice

저는 항상 아름다움만이 실천에 옮겨진다고 믿어왔습니다.

Little privations are easily endured when the heart is better treated than the body,

​몸보다 마음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때 작은 궁핍은 쉽게 참습니다.

Henri Rousseau
 

작품은 볼수있는 지식이다.

​쿠르베

관객이 스스로 작품을 보고 영혼적 성숙을 할수 있도록 제목을 넣지 않았다.

침묵은 정확하다.

​-로스코-

시는 절경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일상 누추함을 승화시킨다.

대상을 표현할때 동물을 식물로 식물을 동물로 사람은 사람이 아닌걸로 더 멀리 치환할수록 재밌어진다.

시적 언어는 구체적으로, 전체가 아닌 부분을 이야기한다. 바다-출렁거리는 거대한 퍼런 물웅덩이

​이미지는 시상을 떠올리고 싶게 그려라. 구체적으로 그릴 필요가 없는 이유

이대흠 시인

2021 9 11

취미에는 객관성이 없다.

제3자(관객)가 개입하면 객관성(설득력)이 필요하다.

그림의 출발은 그림이다.

탁선적 운율-불규칙에서의 규칙, 꽃잎의 모양, 파도의 겹침

칸딘스키

2021 9 11

"예술가는 존재자를 존재로 ​종교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돌아가게한다"

2021 9 8

“세계는 사물들의 총합이 아닌 존재가 처한 상황의 연속이다.”

“예술이란 은폐된 존재의 본래 모습, 즉 진리를 드러내는 활동이다.”

Martin Heidegger

2021 9 8

작품은 대상의 재질을 그대로 가져와 알루미늄 평면위에 붙어있다. 하지만 대상의 입체성은 빛과 어둠을 모방한 흰색과 검정색으로 치환 되어져 있다. 시각 정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것들은 " 본다는것을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내포한다.

직시 한다는것. 바로 본다는것은 인간관계에서도 작동한다. 타성에 빠지지않고 대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여유를 지니고 통찰을 한다.

나는 작품이 진리로 다가가기 위한 사유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한다.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수없이 많은 버려진 진실과  포장된 거짓을 마주한다. ​하지만 세계를 직시(直視)하기 위해서는 오감(五感)에 의한 마음이 현혹(眩惑)되어서는 안된다.

2021 3 2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2021 1 21

좋은 작품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한다.

작품은 작가가 관객에게 주는 포장된 선물이다.

재미는 경우의 수가 많은 것이다.

2021 01 15

돌속에 숨어있는 형상을 해방시킨다.

​형상은 처음부터 돌속에 있다.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냈을뿐이다.

미켈란젤로

2020 06 17

​Aesthetic experience involves the integration of neurally separable sensory and emotional reactions in a manner linked with their personal relevance.

뇌에는  Default mode network (DMA)라는 부위가 있는데 이는 목표나 과제등의 일을 집중할때는 활성화 되지 않으며 멍해있거나 몽상에 빠지거나 아무일도 하지 않을때 활성화 된다.

멍해있기, 몽상, 늘어지기와 같은 비사회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은  여러가지 연상과 상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일상생활에서 활성화되는 뇌의 다른 부위를 자극하며 깨어있는 동안에도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넘나들며 뇌의 균형감각을 지속할수 있게끔 도와준다.

특히 개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봤을때 DMA 활성화 부위가 확대 및 강해지는데 이런한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은 뇌의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동시에 

앞서 밝힌 몽상과 여러 연상과정을 연결시키게 된다.

이는 현실과 비현실성을 넘나들며 뇌의 여러 부위를 고루 자극하며 감각과 감정이 개인적인 것들과 연결되며 점점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러한 자아의 형성은 알프하이머에 걸려도 개인의 작품 취향이 변하지 않는다는 실험을 통해 감정과 감각은 기억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의 뇌 2019 12 12

 

아름다움은 개념을 배제한 보편적 쾌락이다.

엠마뉴엘 칸트

2019 12 12

예술가의 태도란?

2019 5 23

한국 미술 혹은 한국 작가를 서구 미학의 잣대로 평가하는것은 어떠한 문제인가?

2017 11 9

예술가는 ​사회적인 메세지를 지녀야 하는가?

...

 

작가는 진정(眞情)을 토대로 생물끼리 통용되는 표현방식을 빌려 세상과 소통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작가는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와 만나게 된다.

경제적 생산도 하지 않으며 오직 지적 활동만 하는 작가에게 현 세대의 여러 사회 문제는 예술과 현실을 분리하지 않고 서는 견디기 힘든 삶이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항상 시대를 대변하였다.

 

작품에 짓든 사회적 매세지.

작품이 누군가의 취향에 의해 선택 되어지는 것이 아닌 인간 삶의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을 때 비로서 작품의 진정이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가가 현대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인 매세지를 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2016년 전시 오프닝과 근처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떠올리며...

2017 11 9

미술가의 소명이란 창조와 탄생의 순간을 증언하는것

아니쉬 카푸어

 

 

 

화기 / 표현의 기술 < 화법 / 표현의 법도 < 화론 / 표현의 목적 < 화결畵訣/깨달음

전신 / 정신을 전한다

이형사신 / 외형의 묘사를 통해 정신을 드러낸다  - 물질론

최근 예술의 중심 논의는 예술 영역의 확장이다. 아카데미한 미술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예술 영역을 고유의 범위로 한정하거나 기술적 혹은 도재식으로서의 영역으로 한정짓는 방식이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어찌되었든 예술이 기술적으로 더 진보된 혹은 더 높은 상위의 사고나 철학이 아닌 다원성, 다양성을 추구하고, 한 인간이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지만 진정성있는 목소리를 내고 이를 받아들이는 어떠한 행위의 영역이 예술이라하면 21세기 현 예술의 존재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행위의 근본 조건은 다원성으로서 인간은 어떤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될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방식으로만 우리 인간은 동일하다. 이때문에 다원성은 인간 행위의 조건이다.   - 한나아렌트 - ​

2017 7 17

예술가는 가시세계에 드러난 현상 이면의 진실에 대해 탐구할뿐만 아니라 가치나 당위 명제에 대한 호기심도 왕성한것이 과학자와의 차이라 생각한다. 

      2017 6 8

표현할 대상, 즉 어떠한 것을 표현할 것인가? 라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이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할때 표현하고픈 대상을 무작위로 선별하고 그 다음 선별된 대상등의 공통 분모를 종합한다. 그 다음 과정으로 종합된 공통 분모들중 가장 핵심적인 것을 돌출 해내고 다시 이 핵심요소와 대상이 서로 잘 조화 되는지를 살펴 본다. 결국에는 가장 핵심 요소는  "나"라고 하는 자신, 즉 작가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예술작품의 근원은 예술가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예술가로서 존재할수 있는 것은 그가 창조한 예술 작품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근원은 예술작품이다.

- 이진우, 발터 베냐민 : 예술작품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2016 10 15

 

 
 
 
 
작품은 언어를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작품을 감상할 때 느껴지는 것들이 지극히 상투적이라 몇 개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 작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6 9 11
 
 
유물론과 관념론의 오래된 공방은 19세기 자연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물질이 스스로 자기 운동을 한다는 것이 밝혀져 유물론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2016년
빛이 관측자에 따라 물질과 파동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는 현상으로  유물과 관념의 이분법적 세계관 또한 무의미해졌다. 
 2021년
 
 
물질이 갖는 가능성이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나의 모든 작업은 어떻게 하면 대상의 물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결과이다.
2016년 4회 개인전 전시 후

 

 

 

나는 물질을 다루면서 파생되는 에너지에서부터 심지어는 관념까지 작업 과정과 결과에서 발견되는 여러가지 것들을 즐긴다. 

2016년 4회 개인전 준비 중

 

 

 

 

인체 입상 작업의 계획 방향은  "관계" 시리즈의 연장선상으로서 형태는 "관계"시리즈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로 잡았다.

구성적인 요소와 비구성적인 요소. 즉 실제 사물을 캐스팅한 요소와 기하학적인 선, 면 같은 단순한 형태를 합친 형태.

그리하여 수지(REGIN)를 녹인후 유리판 위에 부어서 플렛한 수지판을 만들었다. 그 판을 비구성적인 요소를 상징하는 물질로 대입하여 캐스팅된 인체의 상체 상부에 붙였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된 작업을 보았을때 이러한 행위는 "관계' 시리즈의 입체 형상이라는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이때 플렛한 수지를 제작할때 형성된 판판한 부위의 반대면에서 수지를 녹였을때의 느낌, 열과 수지의 흐름, 예측하지 못한 흐름의 방향, 캐스팅 되지 않은 곳의 반사율등등이 "관계"작업에서 페브릭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에너지를 나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비구상적인 요소를 상징하는 플렛한 판을 제거하고 다시 수지 물질이 가고자 하는 방향, 내뿜는 에너지를 오롯이 보여줄수 있는 물질성을 중심으로 다시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또 다시 이번 작업으로 인해 작업 계획, 상상, 개념들 같은 형이상학적것들과 수지, 캐스팅 틀, 글루, 반사 빛 같은 실체적인 것들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작품을 구성하는데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계획으로는 수지로 인한 물질성의 장점으로 보이는 요소들, 즉 자유로운 캐스팅과 이어 붙임, 예측 어려운 열로인한 흐름등의 실체적인 것들과 형이상학의 대표적 상징인 언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작업을 진행해볼 계획이다. 

 

2016 8 16 4회 개인전 준비하

 

이제껏 전시 공간은 평면회화로부터 시작되어 온 역사와 공간의 활용성, 구조적 경제성 등으로 인해 평면 작품 설치에 가장 합리적 형태인 벽과 바닥, 천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하여 전시공간에서 색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바닥과 벽이 만나는 곳,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에 직선이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이러한 직선으로 가득 찬 공간에 “원”을 한가득 바닥에 설치하여 상반된 두 기하학적 요소를 배치한다.

2016년 4회 개인전 "빛과 원" 설치 계획 중

 

 

야광 물질은 자외선을 만나 빛을 내고 다시 내뱉는다. 이러한 야광 물질의 속성을 중심으로 하여 시간에 따라 야광 물질이 빛을 내뿜고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지속하기 위해 광원의 궤적은 원이라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물질의 속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려 하는 과정은 최종적으로 형태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번 작업에서도 형태를 결정 짓는 것은 물질의 속성이었다.

 

원이라는 형태는 동양에서는 하늘을 서양에서는 태양을 상징하는 도형이고 기하학적 면에서도 완성형에 가까운 도형이다.

도형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출발점으로 가게 되는 형태, 이러한 연유로서 종교에서도 많이 차용되는 형태이다.

“빛과 원”의 작업을 통하여 물질의 속성을 최대한 끌어 내기 위해 형태가 결정되는 과정과 앞에서 말한 원이 가지는 속성들. 이 두가지로써 기호학적인 속성과 형이상학적인 의미는 서로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빛과 원" 작업 과정 중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다.”

-Antoni Gaudi (1825-1926)-

 

“직선은 신의 부재이다.”

-Friedensreich Regentag Dunkelbunt Hundertwasser(1928-2000)-

 

이 건축가들은 곡선과 직선을 신과 인간의 영역으로 분리하여 생각하였다.즉 “신은 곡선, 인간은 직선으로 대비되어 진다”라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직선이라함은 서로 다른 지점에 있는 두개의 점을 이어 놓은 선으로서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곡선은 직선보다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휘어져 있다"는 니체 의 말로 직선과 곡선의 개념 또한 서로의 범위를 넘나들수 있는 개념을 제시 하였지만 그 개념은 이 글의 논점과는 맞지 않으므로 넘어가자]

 

“쌓다” 작업의 중심 생각 또한 이러한 개념의 연장 선상에 있다.

작업재료로 사용되는 지극히 인공적인 “천”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신의 영역으로 대변되어지는 곡선의 조형언어로만 형성되어진 형태를 쫓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을 꼬아서 만든 수백개의 모델중에 조형적으로 잘 이루어진 것을 선택하여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있자면 더욱 더 인간의 조형적 풍미가 느껴진다.

 

2015년 "쌓다" 작업 중

나는 나의 작업이 어떠한 것이 표현된 것으로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 작업 그 자체가 하나의 물질로 인식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림의 독립적인 물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윤곽을 그대로 딴 알루미늄 판 위에 대상이 가진 물질 그대로의 천을 붙이는 행위로 작업의 물성을 강화시킨다.

이렇듯 대상의 텍스쳐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행위를 통해 나의 작업은 하나의 새로운 ‘물질’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이 그림으로서가 아닌, 독립적인 ‘물질’ 혹은 ‘또 다른 대상’으로서 드러나게 된다.

2015년 작업 중

 
인간의 구성 요소로는 실제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과 뇌의 전기신호에서 나오는 관념을 들수 있다.
이 두 요소는  "관계" 작업에서 인간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이미지와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대입되어 재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관계성으로 작업이 구성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인간의 여러 구성 요소인 결정중에 석영이라는 결정체는 기하학적인 직선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자연 그대로를 상징하는 몸과 관념적인 직선의 형태를 가지는 석영의 형태를 같이 구성하여 다시 보여지는 시각적 에너지.
이러한 에너지의 관계성이 "관계" 작품의 중추이다.
2014년 "관계" 작업중에

 

 

나의 작업의 시작은 끊임없는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왜 표현하려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단테는 ‘행위는 자아의 현시’라고 말한다. 그렇게 따지면 작업은 작가의 존재방식이 드러나는 행위이다. 작업을 통하여 ‘나’의 존재를 증명하며 이를 통해 자기를 점점 확고한 방향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인식 과정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인간의 사고와 그에 따른 세계를 바라보는 능력은 시대에 따라 변모한다. 어떠한 물질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생각과 관념을 가진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일궈낸 세계와 물질에 대한 해석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생각이나 관념은 의식 체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물질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어떠한 지점에 물질의 실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인간의 인식으로 경험할 수 없다면 대상의 실체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세계에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작업에서 표현할 대상의 물질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바라보고 해석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오롯이 존재하는 대상의 물질말이다. 인간은 눈이라는 지각요소를 통해 대상을 재해석하기 때문에 순수한 대상의 면모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변적일수 있는 지각 요소를 통해 걸러진 정보 대신 좀 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을 선호 한다. 즉 표현할 대상의 실존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작가의 개인적인 느낌보다는 어떠한 기준에 의해 선택 되어진 요소들을 가지고 일률적 체계(분류, 해체, 합성 등)를 대입하여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여태껏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시각 작용을 이끌어 내는 작업 결과물을 도출해내고 싶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일부를 작업에 직접 부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표현할 대상을 눈으로 보고 그대로 그린 그림보다 더 직접적으로 대상의 실존에 가깝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 보였다. 그리하여 2009년 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오브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작업에 사용할 오브제로 실제의 옷감과 나무결을 얇게 썬 무늬목을 재료로 택했다. 그리고 표면에 에어브러쉬로 명암과 그림자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방식을 통해 대상의 재현을 전제로한 환영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극사실주의 혹은 대상의 새로운 절대적 객관화에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렇듯 실제 사물의 일부를 작품의 한 요소로써 배치를 한다면 표현할 대상과 내가 사용할 재료의 동일성으로 인해 내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나는 대상과 작업재료와의 불일치를 발견하게 된다. 즉, 아무리 내가 양복을 입은 신사의 그림에 실제 양복천을 사용하고 그 위에 명암을 넣는다해도 이는 실제 양복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순수한 물질 그 자체를 표현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이기는 한걸까? 표현할 대상의 본질을 밝히려는 나의 집요한 성향은 ‘일반성을 향한 갈망’ 같은 인간의 내적 본능이 아닐까? 인간은 여태껏 보지 못한 현상이나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일반화하려고 하는 내적 본능을 지니고 있다. 시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시각은 사물을 단순화해서 인지한다. 이러한 시각 요소들의 단순화 과정은 무의식 속에서 굉장히 빠른 순간에 진행된다.

 

나는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표현할 대상의 시각적 요소에서 찾을 수 있는 형태들의 최대한 일반화된 요소를 작품에 대입 하기로 하였다. 즉 점, 선, 면으로 구성된 기본적인 기하학적 요소들을 작업에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인체’ 시리즈에서 나타나는 직선적인 요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형태(완벽한 직선)와 눈으로 지각된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요소들을 작품에 함께 배치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한 작품 안에 유물론적인 사상과 관념론적인 사상 이 두개가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을 토대로 작가와 작가가 표현한 대상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작품이라 하는 것은 작가와 대상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도출된 실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과정의 지속으로 인한 생각과 사고 또는 개념들의 탄생성 이 내가 추구하는 작업행위의 순환고리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12년 작품 논문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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