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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인 "오늘은 잘 모르겠어"는 이전까지 굳게 믿고 지키던 가치와 신념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모호해지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말합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에 해당되는 ‘오늘은 잘 모르겠어’ 작품은 생과 사를 다루는 의사들의 초월적 삶의 시선과 개인적 차원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시 현실의 눈높이로 살아가야하는 상황에서 겪는 고충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 선택이 물질적 이든 감정적 이든 선택의 기준은 결국 나라는 주체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음으로 인해 욕망의 속박에 갇힐 수 밖에 없습니다. 
작품 ‘환자’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통해 겪는 희망과 좌절 속에서 신체 뿐만 아니라 감정 또한 무너져버려 다시 일어설수 조차 없는 상황에 직면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저는 이러한 선택의 경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답은 내가 가장 원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사회적 차원의 선한 영향력으로 승화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과 의식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완전한 퍼즐, 나만에게 당신을, 라이트 형제 작업은 앞서 말한 이 시대에 필요한 참된 인간성을 고양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작품입니다.
‘완전한 퍼즐’과 ‘나만에게 당신을’ 작품은 ‘나만’ 이라는 생각과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당신’이라는 선물을 받음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때에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라이트 형제 작품은 삶에서 무수히 마주치는 고난이 가득한 삶에서 도약하거나 추락하거나 하는 순간에 가장 필요한 정신인 용기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빛비’ 작품에서 갈라진 작품의 표면은 메마른 땅을 지시하며 세속적이고 각박한 사회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작품에 빛이 닿으면 마른 땅에 새싹이 돋아 나듯 하트가 피어납니다. 그렇게 ‘빛비’ 작품은 인위적으로 관객이 조명을 켜서 각도를 맞춰야만 작업이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뀔 것 같지 않은 불합리하고 모순 덩어리인 사회 시스템을 능동적인 행동을 통해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자는 삶의 태도를 시각화 한 것 입니다. 
이번 전시에 다양한 작품 시리즈가 출품되어 얼핏 시각적으로만 보면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목과 의미를 찾아가면서 전시를 천천히 즐기면 결국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하나의 이미지로 귀결됩니다.


은 갤러리 개인전 작가노트

 

관계라는 작품명이 사용된 이유는 Relationship 작업의 출발선이 주체인 나에서 시작되어서 마지막에는 관객으로 끝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Relationship 작업은 처음에 자화상에서 시작되었다. 극사실 자화상에서 출발한 작업은 대상의 객관적 표현을 위해 있는 대상이 지닌 옷감을 그대로 차용함으로서 나만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나만의 시각적 언어 사용은 나의 얼굴 표현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후의 작업은 투명 인간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에 얼굴 대신에 인간 구성 원소에서 볼수 있는 기하학 도형을 덮어 씌우게 되었다. 그렇게 작업은 외형적으로 끝나갔으나 관객은 나 대신 작업에 자신의 얼굴을 투영함으로서 주체인 나와 수용체인 관객의 관계를 이을 수 있는 통로로서 작업이 승화되었다.

​관계 작업

 

생애 초기부터 관찰되는 정서, 작품의 시작은 일출에서부터 시작된다. 새해 첫 일출을 즐기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감탄이 연발한다. 수평선과 색의 조합들로 이루어진 시각 조합은 우리에게 감흥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 감흥은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이 작품은 우리가 느끼는 감흥의 시작점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기질작업

 

나의 작업은 물질을 다루면서 잉태되는 에너지에 집중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물질 자체에 본인의 예술적 근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즉 나의 작업은 전신(傳神) 혹은 유물론(materialism)에서 출발하여 물질 자체에 신(神) 혹은 에너지를 얼마큼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결과이다.​ 

대표적인 작업은 Object Artwork이다. Object 작업은 3mm 두께의 평평한 알루미늄 판재위에 표현할 대상의 실재 표면을 덮혀 씌워서 평면을 확보한다.

그 평면 위에 에어브러쉬의 분사를 통해 음영을 재현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표현할 대상이 실제로 지니고 있는 물질을 직접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재현을 전제로 환영이 아닌 대상의 실체에 가깝게 접근하려는 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리하여 작품은 실재의 질감, 가상의 음영과 형태 등이 어우러져의 가까이 보지 않고는 평면 작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없는 평면과 입체의 경계 사이에 존재한다. 이로써 물질은 작업 행위를 통해 사유 세계를 체험하기 위한 창구로서의 역할로 승화된다.

 

Polymer Artwork 또한 Object Artwork의 연장선에 있다.  Polymer의 재료 특성은 열가소성으로서 열이 더해지면 그 형태가 변화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작업 방식은 인체에 양복을 입히고 전체 혹은 부분을 캐스팅하여 형틀을 만든다. 이 형틀에 폴리머 덩어리를 녹여 형상을 구축한다. 이렇게 구성된 폴리머 덩어리는 인체와 옷의 질감을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현실 세계의 재현적 요소를 그대로 품고 있다. 그러한 폴리머 덩어리에 부분마다 열을 가하여 녹임으로써 인체는 재현의 이미지가 아닌 폴리머의 속성과 함께 구성되어 감각을 유발하는 요소를 야기시킨다. 가령 폴리머가 열로 인해 녹아내린 덩어리와 함께 구성된 인체의 한 부분은  표면이 녹아 형성된 고광택 질감과 피부나 옷감등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무광택의 질감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자극하는 통로를 형성한다. 이렇게 폴리머 물질의 속성을 표면화하는 과정은 인체를 재현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그 존재 자체만으로 완전히 다른 독립적인 존재로서 태어나게끔 한다. 

  이렇게 Object Artwork과  Polymer Artwork의 대상은 주로 인간이다. 발터 베냐민은 "예술작품의 근원은 예술가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예술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창조한 예술 작품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근원은 예술작품이다." 라 하였다. 이처럼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관계는 서로 간 근원의 시작점으로서 존재한다. 이로 인해 내가 표현하는 인간은 나의 자화상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의 군상들은 희로애락의 에너지가 극대화되는 얼굴을 기하학적인 도형으로써 대체하여 관객의 경험적 기억 안에서 인식하는 인간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장치다. 이러한 상상을 유발하는 남성의 양복과 여성의 드레스는 현대 사회와 의복이라는 신분성, 기하학적인 가면으로 인한 익명성,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을 지시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인간의 몸과 정신성을 토대로 한 보편적 원리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범 문화적인 작업이다. 

​Phosphorescent Artwork는 앞선 작품들과는 다르게 순전히 물질 자체의 힘에 관한 것이다. 이 축광 안료(Phosphorescent pigment)는 에너지를 내재하고 있는 성질이 있으며 자외선에 반응하여 빛 에너지를 머금고 내 뿜는다. 작업 방식은 축광 안료를 바닥에 원형으로 뿌린 후 동으로 이루어진 긴 환봉 끝에 UV Led를 달아 축광안료 위를 지나가게 한다. 이에 따라 축광 안료는 빛 에너지를 머금고 발광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시 어두워 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 운동을 위해 작품은 재현이라는 요소를 찾아볼 수 없는 원형의 형태로 작품이 구성되며 이는 시간과 빛에 따라 지나간 흔적의 과정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다. 이는 작품 재료의 속성이 형태까지 결정되는 힘을 내포한다. 또한 원형등의 단순한 형태는 유추할 수 다른 재현의 요소를 불러 일으키는 상상을 차단하며 축광의 흔적에 감각을 집중할 수 있 게 해준다. 이렇게Phosphorescent Artwork은 가시적이고 관습적인 시각 너머를 탐구하는 도정의 시작점으로 존재한다.

Common People 작업은 인간을 대상으로한 작업이다. Relationship작업과도 연장선에 있는 이 작업은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양복을 입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표현한다. 작품은 위인상을 만들 때 동상의 아래를 받치는 구조대를 본따 만들고 그 안에 런닝 머쉰을 장착하여 실재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작품 제목은 Common People로 일반인을 뜻하는데 모든 사람이 위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표현을 반어적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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